제목 [역사와 사진] 25년 전으로 돌아가요!
작성일자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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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진] 25년 전으로 돌아가요!

망월사에서는 오는 18일 단오절을 맞이하여 ‘진신사리 봉안 25주년 기념법회’를 개최합니다.

일시: 불기 2562년(2018년) 6월18일 (월) 오전 10시
장소: 13층 사리탑 앞

대웅보전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사리탑은 성법 큰스님께서 인도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직접 기증 받아오신 진신사리를 봉안한 13층 석탑입니다.

사리탑 앞에서 기념법회 시작을 알리는 도량제를 열고 범패와 승무 등의 의식을 진행하며 육법공양(六法供養: 불교에서 대표적인 공양물 여섯 가지를 이르는 말. 향·등·꽃·과일·차·쌀 등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말함) 등의 순서가 이어집니다.

망월사의 사리탑은 조선시대 병자호란때 전몰한 승병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보탑일 뿐만 아니라 천상과 지상에서 함께 피워낸 현세의 부처님이 나툰다는 적멸보궁이므로 법회와 기도의 원력이 대단함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망월사 사리보탑 조성과 사리봉안]


성법 큰스님께서 망월사지를 복원하기로 서원을 세우신 뜻의 첫째는 사리탑을 조성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간절한 염원이 결실을 맺어 사리탑 불사가 시작되었고, 큰스님의 구상과 계획에 따라 설계도를 작성하고 구체적인 공사계획을 수립했던 것입니다.

기단석과 탑층은 십이인연, 삼법인과 사성제, 육바라밀과 팔정도 등을 상징하도록 조각하여 총 13층으로 하였고, 고려시대 사리탑양식을 기본으로 삼아 탑석은 모두 전북 황등산 화강석을 사용하였습니다.

기단석을 제외한 본층은 모두 통석으로 조성하였는데, 대형크레인 4대를 동원하여 한 개의 통석을 운반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고 견인도중 무게를 이기지 못한 크레인 줄이 끊어져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기단석부터 사리보관층까지 1단계, 그 윗층부터 상단부까지를 2단계로 계획하여, 1993년 4월 예정대로 1단계 공사가 완공되자 5월 단오 봉안 전 일주일동안 '불사리친견법회'를 열어 2,000여 불자들이 부처님진신사리를 친견했습니다.

법회 4일째 되는 날에는 안구사리 1과가 증식하는 기적이 일어나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법력에 놀라움과 환희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일주일간의 친견법회를 마치고 드디어 오월오일 단오절에 각계 인사를 비롯한 300여명의 불자들이 기도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봉안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봉안된 사리는 모두 13과로 당초 성법큰스님께서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봉수한 전체 9과보다 4과가 더 증식한 것으로 불가사의한 불사리 증식에 환희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리봉안을 기리고 징표로 삼기위해 봉안문을 짓고 그 원본을 탑함에 보관했습니다. 다음은 봉안문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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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문>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부처님의 법신이요 살아있는 불법의 징표이며 빛이니 사리의 봉안은 부처님의 법신과 불법을 모시는 것으로 가장 성스러운 일이다.

그토록 귀하고 보배로운 사리를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오로지 성법대선사의 각고의 수행과 염원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숙세의 인연이 있어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불문에 귀의,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의 본견선사 슬하에 출가, 득도한 이후 40여성상을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수행과 포교에 혼신의 힘을 다함에 천지가 감동하여 성스러운 일을 맡긴 것이다.

여기 봉안된 불사리는 13년전, 선사의 수행과 학덕에 감복한 전인도 간디수상과 스리랑카 케레니아 대승정으로부터 봉수한 것으로서, 탑을 건립하여 이곳에 봉안하게된 것은 선사 한 사람의 수행공덕으로 천추만대에 이르기까지 온 누리를 비춰줄 부처님의 빛을 심은 것이니, 이는 선사 개인의 광영이기 이전에 사부대중의 홍복이요 민족의 광영이다.

또한 이 사리의 봉안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2천5백여 년만의 일로 부처님과 선사사이에 비록 2천5백여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의 간격은 있으나 그 인연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에 이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부처님의 위대한 법력이요, 불법의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사리를 봉수하신 날부터 『이 사리는 반드시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의 염원을 이룰 수 있는 곳에 모시리라』 작정한 이후, 조석으로 걱정하고 주야로 근심하며 한서(寒暑)와 원근(遠近)을 가리지 않고 봉안처를 물색하다, 부처님의 인도로 호국의 정기가 서린 남한산 망월사를 봉안처로 정하고, 보궁의 창건과 함께 사리보탑을 조성, 비로소 사리를 봉안하게 되었으니 사리를 봉수한지 13년만의 일이요, 망월사와 인연이 된지 10년만의 일이다.

본 망월사 초창에 대한 역사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조선 중엽에는 외적을 물리치기위한 군승의 군수기지로 쓰였으며 국난과 병화를 겪는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의 정기가 서린 곳이니, 이곳에 사리를 봉안함은 선사의 소원인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금석이라도 뚫는다더니 사리봉안을 위해 애쓰신 선사의 일념은 드디어 불심을 흥기시켜 대시주 양주 조중훈 거사를 비롯, 많은 불자님들의 정성이 뭉쳐 호국의 정기가 서린 이곳에 사리를 봉안하게 되었으니 어찌 이것을 우연한 일이라 할 수 있으리요.

실로 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이 일은 대장부 대선사의 원력으로도 이룩하기 어려운 일이거늘 나약한 비구니로서 대역사를 이룩하였으니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기적을 이룬 것이다.

후일 선사께서 열반한 이후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될지라도 선사께서 봉안한 이 불사리는 불법과 함께 영원히 이 땅에 빛으로 남아, 온 누리를 비출 것이며 선사의 공덕 또한 여기 봉안된 부처님의 사리와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 큰 공덕이 만천하의 불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선심을 일깨워 부처님의 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불기 2537년 음력 오월 초오일
서기 1993년 양력 6월 24일

봉안처: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14번지 소재 대한불교 조계종 남한산성 망월사 비구니수도원

봉안주: 원장 오산 이성법 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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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봉안된 사리는 채봉물과 함께 오동나무로 만등 함에 넣어져 보탑에 봉안되었습니다.


<사리봉안 채봉물목>

금제사리함(대) 4조
금제사리함(소) 8조
금제사리탑모형 1개
은제사리탑모형 1개
금강경 2권
법화경 2권
천지팔양경 2권
천수탑다라니 13매
금제호리병 1개
금제호리병받침 1개
오색명주실 10타래
오색비단 10폭
염주, 단주 등 등
사리봉안 이후 상층부 완성되어 사리보탑 준공 기념법회를 거행하고 망월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 적멸보궁이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1층 기단: 팔각형에 연화 조각 (직경 21척)
1층 본석: 원형통석에 코끼리 21두 조각
1층 상석: 원형 연화 연엽 등 조각 (직경 17척)
2층 본석: 원형 통석에 자축인묘 등 12지신상 조각
2층 상석: 원형 학, 거북, 봉황, 용, 사자, 호랑이, 코끼리, 말, 물고기 등 조각
3층 본석: 원형 통석 18위의 좌불상 조각
3층 상석: 원형 비천상 조각
4층 본석: 8각 통석 각면마다 3위씩 총 24위의 좌불상 조각
4층 상석부터 13층 상석까지 10개층 상석은 시방세계를 상징하는 고전 기와집 모형 조각
5층 본석: 8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24위의 좌불상 조각
6층 본석: 8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24위의 좌불상 조각
7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8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9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10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11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12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13층 본석: 4각 통석에 각면마다 3위씩 총 12위의 좌불상 조각
상층 첨석: 7개층을 원형으로 조각


조각가: 이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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