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백낙천(白樂天)과
고목의 가지에 올라가 참선수행을 하는 도림 선사(道林禪師)의 일화를 담은 벽화를 소개합니다. (대웅보전 뒷벽 좌측에서 두 번째 아래)
당 나라의 백낙천은 시인으로도 이름났지만 경륜이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학식과 견문이 두루 뛰어난 데다가 벼슬이 자사에까지 오르니 자못 우월감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가 항주의 자사로 부임하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항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찰에 도림(道林) 선사라는 이름난 고승이 살고 있었습니다. 도림선사는 항주(抗州) 출신으로 9세 때 출가하여 도흠선사(道欽禪師) 등으로부터 심요를 전수받았습니다.
스님은 청명한 날이면 고목의 가지에 올라가 참선을 했는데 마치 새의 둥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조과선사(鳥窠禪師)또는 작소선사(鵲巢禪師)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등록> 등에 전해집니다.
도림선사의 고명을 들은 백낙천이 하루는 '내가 한 번 직접 시험해 보리라' 작정하고는, 선사가 머물고 있는 절을 향해 수행원을 거느리고 찾아갔습니다.
도림 선사는 청명한 날이면 경내에 있는 노송 위에 올라가 좌선을 하곤 하였습니다. 마침 백낙천이 도림 선사를 찾아간 날도 나무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스님의 좌선하는 모습을 본 백낙천은 아슬아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사의 거처가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선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말하였습니다.
"자네가 더 위험하네."
"나는 벼슬이 이미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또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도대체 무엇이 위험하다는 말이오?"
백낙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하자, 선사는 그가 학문과 벼슬에 대한 자만심이 대단한 것을 알고, 이 기회에 그의 교만함을 깨우쳐 주려고 곧바로 쏘아붙였습니다.
"티끌 같은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선사는 백낙천에게 명리와 이해가 엇갈리는 속세가 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 준 것이었습니다.
선사의 어조는 차분했으나 백낙천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백낙천은 자신의 마음을 환히 꿰뚫어보는 듯한 눈매와 자기가 자사라는 벼슬에 있음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다하는 도림 선사의 기개에 그만 온전히 압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애초에 선사를 시험하고자 했던 오만 방자한 태도를 바꾸어, 백낙천은 옷깃을 여미고 공손하고 겸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제가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법문을 한 구절 들려주십시오."
이에 도림 선사는 다음과 같이 설하였습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중선봉행(衆善奉行)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 이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法句經 중 제183번째 게송)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이 같은 대답에 실망했습니다.
"그거야 삼척 동자라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백낙천이 신통치 않다는 듯이 말하자, 선사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하였습니다.
"알기야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인격화하지 않으면 교만과 번뇌만이 더할 뿐, 진리의 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당대의 문장가 백낙천은 그 후 도림 선사에게 귀의하여 불법의 수행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도림선사와의 일화와 도림선사가 준 활구법문을 세상에 전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만년에는 낙양(洛陽) 땅 여산에 자신의 초당집을 짓고 절로 바꾸어 평소의 생활과 수행을 일치하는 삶을 사는데 진력을 다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백낙천의 명문 시구들은 도림선사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얻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름은 거이(居易), 자는 낙천이며 호는 향산 거사입니다. 불광 여만(佛光如滿) 선사의 법을 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