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역사와 사진] 극락보전 복원
작성일자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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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진] 극락보전 복원


서기 1984년, 성법선사께서 사재를 털어 寺地를 인수하고 유적조사, 문화재지정, 불사금모금, 공사허가취득, 진입로확장, 복원계획수립 등 6년여에 걸친 준비와 계획 끝에 1990년(庚午年) 12월 19일 「극락보전 복원 기공식」(남한산성 망월사 복원불사 기공식)을 거행했습니다.

癸座丁向(癸坐丁向穴: 음양오행설, 풍수설에 의해 吉地로 선택되는 방향 가운데 하나. 북쪽과 동쪽 사이의 癸方을 등지고 丁方인 남서와 南微西를 바라보는 坐向)에 건평 24평 규모로 기초를 시작한 이 공사는 8개월만인 이듬해 8월24일(음력7월15일), 드디어 상량식을 거행하였으니 이는 선사께서 복원의 서원을 세운지 7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運河 안영호 거사가 아래와 같은 상량문을 지었습니다.

<남한산성 망월사 금당 상량문>

가람은 삼보를 호지하는 신성한 전당이요 수도전법의 근본도량이며 만중생의 귀의처요 人天의 복전으로써 그 소중함이 天宮·玉闕에 비교할 바 아니다. 그러므로 세존이 성도하신 뒤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은 왕성의 요지를 할애하여 죽림정사를 건립하여 傳法度生의 도장을 시설하였고, 사위국의 수달장자는 기타태자의 화려한 동산을 구입하여 장엄한 기원정사를 조성하여 세존과 천이백 대중의 상주도량으로 봉헌함으로서 佛陀 1대에 安住說法 하시어 無量人天을 제도하게 하였으니 佛刹 가람의 중대성과 佛事功德은 不可思量이로다.

‘자연계와 인간계의 모든 사물은 인연 따라 생성되고 또 소멸 된다’ 함은 佛陀의 교지요 우주의 법칙이다. 이곳에 일찍이 가람이 건립되었다가 폐허가 되고 이제 다시 중창됨은 또한 인연법칙에 따름이었다.

남한산은 百濟古都의 鎭山이며 漢陽王都의 朝岳으로서 천여 년 국가를 진호해온 神山灵岳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천축 승 마라난타를 맞아 왕은 禮敬하여 불법을 신봉하였고 翌年 한산에 불사를 창건하였다하니 남한산 창사는 천육백여 년 전이다. 이와 같이 남한산은 백제불교의 溫床으로 지금도 송파·천호동 일대에 古寺의 유적이 많이 발견됨이 그 史證이다. 조선 중엽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神福禪寺·봉수사·약정사가 남한산에 있다 하였다.

망월사의 初創은 알 수 없으나 廣州誌에 망월사가 장경사 後麓(산기슭 뒤)에 있는데 南漢九寺 증 가장 고찰이라 하였다. 고려 때 자하문 밖에 장의사가 있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定都할 때 허물고 불상과 금자화엄경 한 질과 금정(쇠솥)을 此寺에 옮겼다하였으니, 그렇다면 망월사가 高麗代였다는 증거이다.

인조 2년(서기 1624년) 이곳에 산성을 쌓을 때 벽암 각성대사로 팔도도총섭을 삼아 팔도승군을 소집하여 城役을 할 때 망월사를 중건하고 다음 옥정사를 건립하고 이어 개원사·장경사·한흥사·국청사·천주사·동림사·남단사·영원사 등 총 九寺를 축조한바 승군의 숙식 및 軍器·화약 등을 비축하였다한다. 이 城은 인조 14년 병자호란에 왕이 移御하여 적과 항거한지 40여일, 衆寡不敵으로 삼전도에서 屈降의 국치를 당한 일이 있다.

그 뒤 망월사 등 9사는 승군이 점유하였는데 그 후 장경사 외는 모두 폐사되었다. 8·15 후에 한 佛信女가 토굴을 얽어매고 있었는데 8년 전, 성법 비구니가 인수하여 유서 깊은 명승고찰의 중창을 부처님께 발원하고 丹誠을 쌓아 오던 바 삼보의 가피로 대한항공 조중훈 거사의 시주로 불전·승당·수도장을 一新重創하기로 하고 먼저 극락보전 금당을 착수, 지난 경오년 12월 19일 기공식을 가졌고 금년 8월 24일 午時, 상량하게 되었다. 조중훈 거사는 숙세의 선근으로 萬國橫行의 항공대업을 이끌면서 불심이 독실하여 6·25사변으로 재가 되어버린 오대산 월정사를 일신중창하였고 효창공원에 원효동상을 건립한 바 있는데 이제 망월사 중창 공덕주가 됨은 매우 偉擧이다.

중창주 성법비구니는 경북 안동에서 퇴계선생 15세손으로 托生, 본명은 동영이며 25세에 오대산 월정사에서 本堅師를 은사로 득도한 뒤 건국대 동양철학과를 이수하고 중화민국 임제총본산에서 천불대계를 수지, 同 삼장법사 학위를 취득, 同 문화대학 철학과 졸업이후 포교와 국제불교 활동에 헌신하였고 문서전법을 위해 <선재동자 구법행각>·<불보살의 본적>·<대승기신론강화> 등 다수 불서의 발간 등 可謂 如來使者이며 護法菩薩이다. 이 중창불사는 수도전법의 聖가람으로서 의의와 사명이 더욱 크고 많다하겠다.

伏願 상량후

頌曰, 天神地祇 山神國社 法海澄淸 擁護道場 增益楨祥 佛日增光
仰願, 信心佛子 開人天眼 作大福田 雲集道場 發智慧光 度生無量
亦願, 重創佛事 百障殄滅 現增福壽 大功德主 萬德成就 當生淨土

附記: 재래의 ‘兒郞偉抛樑東’ 등의 문자유희를 떠나 실질적인 사적유래와 중창연기를 기록한 것이니 諒察焉

불기 2535년 (1991년) 8월 24일

중창주 주지 성법 비구니 (당 63세)
중창대공덕주 양주 조씨 중훈 거사
도편수 전흥수
전 동국대교수 문학박사 법운거사 이종익 증
조게종 포교사 영취산인 운하거사 안영호 서

채봉물목(생략)
이날 상량식에는 각계인사 및 불자 등 2백여 명이 참석해 불사의 원만성취를 기원했다.

이 공사는 우리나라 사찰건축에 많은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는 OO사가 맡았고 석재부분은 북일석재가 맡았다.

목재는 주로 러시아산 ‘다그라스 목’을 썼고, 기와는 전통기와 산지인 울산에서 구은 것을 올려다 썼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 사찰양식으로 설계되었고 옛 가람으로서의 운치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문은 모두 무궁화 문양으로 조각했고 내외 벽면은 벽화를 넣을 수 있도록 표면을 특수처리 했다.

(이하 공사비 등 생략)

이 공사를 맡아 수고한 인사는 다음과 같다.

도편수: 전흥수 김달원
석수: 이칠영
도감수: 주동균 외 목재 및 瓦手 수십인


<극락보전 불상봉안>

극락보전에는 법식에 따라 마미티불·관세음보살·지장보살 등 삼존불을 새롭게 조성해 모시기로 하고 우리나라 청동불상 조성에 조예가 있는 부산 성불사에 조성을 의뢰, 3위 모두 청동개금불상으로 조성했다.


<삼존불 후불탱화>

삼존불 후불탱화는 가로 9척 두께 1척의 알마시카 목판에 아미타 부처님을 비롯해 모두 39분의 존상을 조각했다.


<신중탱화>

삼존불 좌측에 모셔진 신중탱화는 가로 9척, 세로 8척, 두께 1척의 알마시카 목판에 모두 39분의 존상을 조각했다.


<현판 및 주련> (생략)
<단청 및 벽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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