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역사와 사진] 적멸보궁 대웅보전 복원
작성일자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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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진] 적멸보궁 대웅보전 복원

서기 1989년 유적조사 당시 옛 대웅전의 규모가 대략 80여 평 정도로 확인됨에 따라 옛 가람의 규모대로 복원할 예정으로 설계했으나 정부 당국의 조정 요청이 있어 50평 규모로 설계를 변경하여, 1991년 11월 21일 불교계 인사와 불자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癸座丁向(癸坐丁向穴: 음양오행설, 풍수설에 의해 吉地로 선택되는 방향 가운데 하나. 북쪽과 동쪽 사이의 癸方을 등지고 丁方인 남서와 南微西를 바라보는 坐向)으로 설계된 대웅보전도 주추 및 석재부문은 ‘북일석재’가, 건축부문은 ‘㈜서원건설사’가 맡아 두 개의 회사 합동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석재는 塔石과 같은 전북 황등산 화강암을 썼고 목재는 주로 러시아산 ‘다그라스 목’을 사용하였습니다. 기와는 극락보전과 같이 울산의 전통기와를 썼습니다.

공사도중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정대로 1992년 음력 7월 29일 각계인사 및 불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량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날 상량식에는 봉선사 月雲 大禪師가 佛事의 원만성취를 위해 축원하였고 중창주이신 성법 선사께서 상량문을 직접 지어 보전복원의 뜻을 기렸습니다.

건축양식은 고려시대 양식으로 했으며, 습기로부터 목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표로부터 2척 반 높이로 礎石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문양을 조각한 1척 반 높이의 초석을 놓은 다음, 초석상단에 다시 3척 높이의 돌기둥을 깎아 세워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특수공법으로 건축했습니다.

보전의 왼쪽 벽면에는 대형 유리벽을 설치하여 대웅전 안에서 사리보탑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벽면마다 벽화를 넣을 수 있도록 표면을 처리하고 내부는 대웅보전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정교하게 보궁형 닫집(唐家, 傘蓋)을 조각하여 설치했습니다.

도편수: 전흥수 김달원
석수: 이칠영
도감수: 주동균

<대웅보전 104위 신중탱화 봉안>

서기 1993년 가을 보전 내부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신중탱화조성불사에 착수했습니다. 보전 내 오른쪽에 모셔진 신중탱화는 두께 1척의 알마시카 목판으로 모두 104위의 신중상을 조각하여 1994년 2월에 봉안하였습니다.

이 탱화불사는 신중위가 모두 104위이므로 불자 104가구의 시주로 이루어졌으며 그 동덕을 기리기 위해 ‘시주부’를 작성하여 태화 후면에 넣었습니다.

化主: 배정각행, 김보현심
施主: 104불자 가구
조각: 이진형(불교조각원)

<대웅보전 주련>

만대윤왕강사주 萬代輪王降斯洲
만대에 법륜을 굴리시는 법왕께서 이 땅에 오시어

쌍림시적기천추 雙林示寂幾千秋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신지 몇 천 년이던가?

진신사리행재유 眞身舍利幸在猶
진신사리가 다행히 남아 있어서

보사군생예불휴 普使群生禮不休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쉼 없이 예배하게 하였네.

여월보현일체수 如月普現一切水
마치 달이 일체의 물에 널리 나타나듯하여

농엽지제화운필 弄葉止啼化云畢
나뭇닢으로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여 교화를 마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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